새벽 4시, 보령 대천항. 엔진 굉음과 함께 어선들이 바다로 나가지만 선장들의 표정은 예전 같지 않다. 만선(滿船)의 깃발은 희미해졌고, 기후 변화로 달궈진 바다는 낯선 어종들을 토해내거나 침묵한다. ‘잡는 어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신호다. 어민들의 한숨만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바다가 비어가는 지금이 역설적으로 보령 수산업의 체질을 뜯어고칠 ‘골든타임’이다.
보령의 미래 먹거리는 더 이상 그물 속에 있지 않다. 수산업계가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두 가지다. ‘해양 바이오(Marine Bio)’와 ‘미식(Gastronomy) 혁명’이다. 단순히 물고기를 잡아 파는 1차원적 산업 구조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먼저 바다를 ‘거대한 원료 공장’으로 재정의하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우리가 흔히 식탁에 올리는 김, 굴, 해조류를 단순히 ‘반찬’으로만 보는 시각은 낡았다. 이들 수산 자원에서 특정 성분을 추출해 의약품이나 기능성 화장품, 건강식품으로 가공할 때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원물로 팔면 몇 천 원에 불과한 해산물이 바이오 기술을 만나면 수백 배의 부가가치를 지닌 ‘바다의 반도체’로 변모하는 것이다. 수온 상승으로 어획량이 줄어든다면, 기술을 통해 부가가치를 100배로 튀기는 것이 냉혹한 기후 위기 시대의 생존법이다.
이와 함께 하드웨어인 기술에 소프트웨어인 ‘문화’를 입히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필자가 과거 제안했던 ‘국제 해산물 요리학교’ 설립은 그 핵심 퍼즐이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웰니스(Wellness) 산업의 종착역은 결국 ‘음식’으로 귀결되고 있다. 보령의 청정 해산물을 활용한 치유 음식은 그 자체로 강력한 관광 자원이다.
상상해보라. 세계 각국의 셰프 지망생들이 보령에 모여들어 지역 특산물로 프렌치, 스패니시 요리를 개발하는 풍경을. 단순히 회 한 접시, 조개구이 한 판을 먹고 떠나는 관광지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지역 식재료가 명품 요리로 재탄생할 때 보령은 단순한 휴양지를 넘어 ‘미식의 성지’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보령의 100년 대계(大計)는 멀리 있지 않다. 스마트 양식장과 연구소에서는 청년들이 바다의 바이오 소재를 발굴하고, 요리학교에서는 셰프들이 보령의 맛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위기의 바다를 탓하지 말고, 기술과 미식이라는 새로운 엔진을 달아야 할 때다. 보령 앞바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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