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풀뿌리 자치’라는 허울…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주민자치회
주민참여예산은 ‘지역 업자 먹잇감’으로, 자치회 전환은 ‘자리 만들기’로 변질
보령시 부채만 583억인데… 전문성 없는 민간에 행정 떠넘기며 세금 낭비 극치
‘주민 자치’와 ‘주민 참여’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 제도들이 실제로는 지방 재정을 좀먹고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조직 비대화와 예산 낭비, 그리고 주민참여예산제를 둘러싼 이권 개입은 현 자치 행정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환상이 어떻게 세금 낭비와 행정 비효율이라는 괴물을 낳았는지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때다.
◇ 주민 참여 가장한 ‘이권 개입’과 세금 잔치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이 직접 필요한 사업에 예산을 편성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현실은 비전문가들의 해방구이자 지역 업자들의 이권 개입 통로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전문성이 없는 일반 주민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사업 예산을 정교하게 산출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허점을 노린 지역 토착 업자들이 움직인다. 이들은 특정 주민들을 부추겨 자신들에게 유리한 토목 공사나 용역 사업을 제안하도록 유도한다. 결국 주민참여예산은 공공의 이익이 아닌, 소수 목소리 큰 이들과 업자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 ‘간판’ 바꾸자마자 폭증하는 비용… 결국 공무원이 대행하는 현실
단순히 ‘위원회’에서 ‘회’로 간판을 바꾸는 자치회 전환 프로세스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수반한다. 16개 읍·면·동마다 별도의 사무국을 신설하고 사무국장을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주민자치위원회는 동사무소 회의실을 활용하고, 위원 수당(3만 원)마저 회비로 내어 행사 지원 등 최소 경비로 쪼개 쓰며 군더더기 없이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주민자치회로 전환되는 순간, 사무국장 급여와 사무실 임대료, 집기 구입비 등 고정 비용이 매달 쏟아져 들어간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들의 행정 수행 능력이다. 현재도 회의 시나리오 작성, 예산 보고서 작성 등 자치위원회 관련 실무는 동사무소 공무원들이 도맡아 ‘대행’해주는 실정이다. 전문적인 행정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민간 사무국장이 공무원 수준의 행정력을 발휘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결국 일은 공무원이 다 하고 생색과 자리는 민간이 챙기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공무원의 업무 책임을 민간에 은근슬쩍 떠넘기려는 얄팍한 시도이자, 행정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자초하는 행위다.
◇ 부채 583억 보령시, ‘보여주기식 행정’ 멈춰야
현재 보령시는 무려 583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허덕이고 있다. 단돈 1원이라도 아끼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할 시점에, 이처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조직 개편에 세금을 쏟아붓는 것은 시민들에 대한 배임에 가깝다.
주민 의견 수렴은 굳이 돈 드는 옥상옥(屋上屋) 조직을 만들지 않더라도, 기존의 ‘동장 순방’이나 동사무소 채널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 본질적으로 공공의 책임 하에 공무원이 수행해야 할 행정 업무를 민간 조직에 어설프게 위임하는 것은 책임 회피를 위한 방조일 뿐이다.
중앙정부의 지침이라며 마지못해 추진하는 구태의연한 관행은 이제 끊어내야 한다. 주민자치회 전환이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라면 즉각 폐지해야 마땅하며, 설령 의무라 할지라도 조직 규모를 최소화하고 예산 집행을 철저히 통제해 비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줄여야 한다. 명분만 번지르르한 ‘세금 블랙홀’에 더 이상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할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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